아이패드를 6세대에서 프로로 업그레이드하고, 많은 짐을 갖지 않으려 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선택하며 전자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책장에 꽂혀 있는 많은 책들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다가도 결국 한 번 읽고 마는 책들을 위해 너무 많은 공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또 이곳저곳 이동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상 태블릿을 이용해 전자책을 읽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자책을 읽는 데는 크게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교보문고나 인터파크 같은 온라인 서점에서 전자책을 '구매'하는 것과 밀리의 서재나 리디셀렉트 같은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많은 책을 읽고 싶은데 하나하나 구입하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하였고, 기존에 넷플릭스를 아주 잘 이용하고 있었기에 구독 서비스가 더 잘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독 서비스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뒤로는 밀리의 서재와 리디셀렉트를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플랫폼이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었지만, 먼저 시장에 진입해 훨씬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밀리의 서재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고민할 때만 하더라도 뷰어는 리디셀렉트 쪽이 낫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니 밀리의 서재 뷰어도 크게 흠잡을 데가 없었고 그마저도 최근 업데이트로 많이 개선되어 뷰어로 인한 불편은 딱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밀리의 서재의 구독을 5개월만에 해지했습니다. 정확히는 전자책에서 종이책으로 돌아간 것이지요. 이유는 잠시 후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자책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마음먹은 당신에게, 밀리의 서재를 추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굉장히 많은 책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읽을 거리가 없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2. 앱의 메인 페이지에서 다양한 책을 추천받을 수 있다.

  3. 독서노트와 통계를 이용할 수 있다. 기기 간 전환이 자연스럽다.

  4. (유사한 서비스 전체의 장점이지만) 몇권을 읽든 추가적인 돈이 들지 않는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굉장히 많은 책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읽을거리가 없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보유하고 있는 권수가 10만권이 넘는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이보다 많은 책을 보유한 도서관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성균관대학교 학술정보관이 보유한 장서가 국내서와 국외서를 합해 101,885권이라는데(https://lib.skku.edu/#/guide/statistics), 얼마나 많은 수치인지 감이 오시나요?

 

 읽을 수 있는 책의 종류가 다양한 편이라는 것도 장점입니다. 보통 전자책 시장 특히 구독형 대여 서비스들은 소설과 자기 계발서에 집중된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 전자책이 보다 대중화되며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많이 추가되었지만, 크게 만족할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밀리의 서재는 워낙 많은 책을 보유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다양성도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습니다. <핸즈온 머신러닝> 같은 머신러닝 실무 도서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관련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들어보기도 힘들었을 책인데, 이런 책들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또 잡지를 좋아하는 분에게도 탁월한 선택이 되겠는데요, 상당히 많은 잡지를 갖추고 있고 신규 호가 꾸준히 잘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맨즈헬스>, <마리끌레르> 같은 흥미형 잡지나 <씨네21> 같은 문화 잡지, 또 <동아 비즈니스 리뷰(DBR)> 같은 경영학 잡지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원하는 잡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동아 비즈니스 리뷰>의 매거진 구독료가 월 21,900원인데(https://dbr.donga.com/service/month), 이것만 열심히 읽어도 개이득인 기분이겠죠.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을 갖추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전자책 대여 서비스에서 밀리의 서재를 선택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2. 앱의 메인 페이지에서 다양한 책을 추천받을 수 있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조금 갈릴 수도 있겠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책들만 쭉 제공하는 페이지를 원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했을 때 서점 측에서 마련한 각종 테마의 코너를 구경하길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장점이겠지요.

 

 

 앱을 켜면 배너를 통해 여러 이벤트, 캠페인 등을 확인할 수 있고 이와 관련된 책을 추천받을 수 있습니다. 또 <오늘의 책> 코너를 통해 하루에 한 권씩 밀리의 서재 측이 선정한 책을 만나볼 수도 있죠. 책을 읽다보면 처음에는 읽고 싶은 책 목록이 잔뜩 있다가도, 나중에 가면 '뭐 읽지?'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런 추천이 도움이 됩니다. 적어도 불쏘시개를 추천하지는 않겠지요(물론 사람마다 취향은 제각각이라 불쏘시개가 걸릴 때도 있긴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테마, 예를 들면 '8시간 만에 살펴보는 각양각색의 세계사'와 같은 제목으로 책을 묶어놓고 추천하는 것과 본인의 독서 취향 태그별로 추천 도서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사실 이것은 영화 관련 서비스인 왓챠에서 이미 많이 경험한 것들이죠. 왓챠의 이러한 서비스를 좋아했던 분이라면 꽤 맘에 드실 겁니다.

 

3. 독서노트와 통계를 이용할 수 있다. 기기 간 전환이 자연스럽다.

 

 

 '내 서재' 메뉴에서 이용할 수 있는 독서노트는 꽤 유용합니다. 뷰어로 전자책을 읽다 보면 원하는 부분에 하이라이트 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책이라면 다시 그 하이라이트를 보기 위해선 그 책을 펼치고, 밑줄 그은 부분을 찾아야 하겠죠. 하지만 밀리 앱에서는 '독서노트' 란에서 하이라이트만 모아서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다 좋았던 부분들을 기록하고 모아볼 수 있는 노트가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평소 책에 밑줄 긋기를 좋아하고 메모를 즐겨하셨던 분들이라면 굉장히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또 독서 통계를 이용하면 내가 몇 권의 책을 몇 시간 동안 읽었는지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독서 습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잡아나갈 분들에게 유용한 기능입니다.

 

 기기를 바꿔가며 읽기 편하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저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모두 밀리 앱을 설치해두었습니다. 책상에서는 아이패드로 책을 읽지만, 화장실에 갈 때나 대중교통에서는 폰으로 읽습니다. 이 때 밀리 앱은 기기가 바뀌어도 바로 전에 읽던 위치를 기억해 찾아줍니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읽던 부분을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4. (유사한 서비스 전체의 장점이지만) 몇권을 읽든 추가적인 돈이 들지 않는다.

 

 밀리의 서재의 모든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돈은 그저 월 구독료뿐입니다. 한 권의 책을 읽든, 백 권을 읽든 지출하는 금액은 같습니다. 일단 제목이 맘에 들면 내 서재에 담아 바로 읽다가 5 페이지 정도 읽고 맘에 안 들어 삭제해도 상관없습니다.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콘텐츠를 뽑아 먹으면 먹을수록 이득인 거죠. 잘만하면 돈을 버는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구독을 해지했다는 것은, 저에겐 단점들이 더 크게 와닿았다는 것이겠죠. 제가 느낀 단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생각보다 잘 보지 않게 된다(전자책의 태생적 한계?)

  2. 별로 알고 싶지 않은 한줄리뷰와 밀리 완독 지수

 

1. 생각보다 잘 보지 않게 된다(전자책의 태생적 한계?).

 

 보면 참 좋은데, 생각만큼 그렇게 보지 않게 되더라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독서 집중력도 상당해서 한 번 책을 잡으면 30분 1시간 이렇게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이 있지 않는다면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리곤 합니다. 이런 제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읽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읽을 수 있느냐'입니다. 책상에 놓인 책을 보면 신경이 쓰입니다. 빨리 하던 일을 끝내고 책을 읽고 싶습니다.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고, 손길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전자책을 읽는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책상에 놓인 아이패드는 사실 그냥 아이패드입니다. 책이 아니죠. 킨들 같은 전용 단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자책 단말기'일 뿐이지 전자책 그 자체는 아닙니다. 밀리의 서재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아이패드의 잠금을 해제하고, 밀리 앱을 터치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유혹도 참아내야 하죠. 실물 책이 있다면 그냥 집어 들고 읽으면 끝이지만, 전자책은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니 책을 읽기 시작하는 과정 자체가 귀찮아질 때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월 구독료가 합리적이고 많은 책을 갖추고 있더라도 읽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죠. 저는 차라리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씩 빌려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선택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눈이 편하고 진짜 종이가 손에 느껴지는 것은 덤입니다.

 

2. 별로 알고 싶지 않은 한줄리뷰와 밀리 완독 지수

 

 밀리는 여러 면에서 왓챠피디아(왓챠)와 비슷합니다. 취향을 분석하고, 작품을 추천하고,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의 리뷰를 보여줍니다. 저는 이것이 독서에 꽤 방해가 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책을 읽는데 남들의 한줄리뷰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콘텐츠입니다. 저명한 책이나 고전을 주로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더하겠지요. 이미 역사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검증하고 칭찬한 책인데 이름 모를 사람의 한줄리뷰는 딱히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리뷰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주 끝장' 같은 수험서에 더 유용합니다. 수험서는 사람들의 리뷰를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죠. 하지만 문학, 고전 등에서는 과잉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약간 흥미 있는 영화 작품인데 괜히 안 좋은 별점리뷰 몇 개 보고 감상을 접어버린 경험 다들 한 번씩은 있을 겁니다. 막상 직접 보면 나름 괜찮고 나랑 잘 맞는 작품인 경우가 많은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리뷰 한 줄 때문에 내 경험이 시작조차 되지 않는 것이죠.

 

 

 책마다 달려 있는 '밀리 완독 지수'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특정 분야의 도서 평균 대비 완독할 확률과 완독에 걸릴 예상 시간을 보여주는데, 남들이 얼마나 완독 했는지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와 닿지 않습니다. 독서가 퍼즐 맞추기도 아니고 '이 책은 완독 확률이 높으니 도전해봄직 하겠어' 혹은 '이 책은 완독 확률이 낮네. 섣불리 덤볐다간 큰코다치겠는걸. 일단 접어두고 다른 책을 찾아보자'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이런 독서 습관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더구나 대여 서비스 특성상 애초에 전혀 읽을 마음이 없는데 일단 클릭만 해보고 읽지 않는 경우도 굉장히 많을 겁니다. 이런 쓰레기 데이터를 배제하는 데이터 전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진 후 제공되는 통계 인지도 의문입니다. 물론 유용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한줄리뷰와 완독 지수 모두 자칫 독서 경험을 방해할 수도 있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런 점들 그리고 기타 자잘한 요소들 때문에 저는 월 12,000원(뒤늦게 알았지만 웹 브라우저에서 가입하면 9,900원이라네요. 앱스토어 이새기들...)의 구독을 유지하는 게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여 현재는 해지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동네 도서관을 통해 종이책을 이용하는데 역시 이쪽이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OTT 서비스가 대세가 되면서 한 사람이 여러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세상입니다.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밀리의 서재 등등... 이런 것들에 매달 나가는 비용을 합산해보면 은근히 큽니다. 밀리의 서재 역시 다른 서비스들과 마찬가지로 첫 달 무료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니 한 달 동안 경험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분명 장점이 많고 전자책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면 이보다 나은 선택은 별로 없거든요. 그럼 즐거운 독서 생활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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