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그전에도 시험기간에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종종 소셜 미디어(SNS) 앱을 지우고는 했지만, 이번엔 아주 그만둘 작정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다. 인스타그램 속의 세상이 더는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고, 즐겁지도 않은 콘텐츠를 멍하니 스크롤하며 보고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아무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아이콘을 누르면 그리 친하지도 않은, 몇 개의 좋아요와 짤막한 이모지로 이어가는 희미한 인연들의 딱히 궁금하지 않은 일상들이 쏟아진다. 유형은 거의 비슷하다. 예쁜 인테리어의 카페 / 핫한 맛집 / 여행지에서 찍은 행복해 보이는 사진들(최근에는 제주도가 대세다)... 사진들을 내리다 보면 갑자기 광고가 나온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광고에 잠시 눈길을 준다. 그리고 다시 비슷한 일상들이 끊임없이 공유된다. 이제 나는 이런 것들이 재미가 없다. 내가 그동안 올린 사진을 보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러고 보면 우린 사실 서로를 신경 쓰면서도 딱히 그렇게까지는 관심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 활동에는 과연 무슨 의의가 있길래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데 소모해버리는 것일까? 회의감이 들었다.

 

 물론 10년 가량 이용해 온 소셜 미디어를 한순간에 완전히 끊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밤에 스마트폰을 쥐지 않은 채로 누워있으니 잠도 오질 않고, ‘잠깐 로그인해서 확인해볼까? 그냥 확인만 하는 거야’라는 유혹이 날 괴롭혔다. 그렇게 막상 웹으로 접속해서 SNS를 확인하고 나면, 역시나 정말 별 것 없는 세상이다. 나의 소식을 궁금해할 사람도 없다. 결국 더 큰 현타가 찾아오고 만다. 이 짓을 몇 번 반복하니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해봤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니까. 그리고 실제로 확인했으니까.


 그러다 이 영화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짤막한 추천이었는데, 왜 우리가 점점 이 세상에 빠져들고 세상이 양극화되어가는지 잘 보여준다고 하였다. 옳다구나 하고 퇴근 후 간식을 사서 넷플릭스로 영화를 시청했다.

 

 

 

 

 

 이것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전 구글의 디자인 윤리학자, 전 핀터레스트 회장, VR의 아버지, 인스타그램 초창기 멤버, 모질라 파이어폭스의 핵심 시스템을 만든 사람, 저명한 교수 등등... 이 주제와 깊게 연관된 정도가 아니라 그 시스템을 직접 만든 이들이 바로 증언자이다. 그들은 사용자들은 모르는, 인공지능과 소셜 미디어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일반적인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누군가는 음모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창조하고 사람들이 더 빠져들도록 관리해온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내내 보는 이를 긴장하게 한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을 다루고 있다.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우리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조종하여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자존감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는지.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사용자의 데이터를 이용해 계속해서 이 사람이 흥미를 갖게 한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들 접했을 것이다. 실제로 구글에 BTS를 몇 번 검색한다면 유튜브 메인 화면의 추천 영상으로 BTS 관련 영상이 쏟아진다. 그중 몇 개를 클릭해서 보면 유튜브는 끊임없이 관련 영상을 뽑아와서 추천해준다.

 

 문제는 우리는 우리가 유튜브에 접속해 영상을 시청하는 것 자체는 우리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이 알고리즘에 의해 이미 설계된 결과라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는 어떻게든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해 별 짓을 다한다. 언제든지 사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알림을 내뱉는데, 이 알림의 주제와 내용조차도 사람마다 각각 다 다르다. 같은 동네에 살고 거의 모든 친구를 비슷하게 공유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SNS의 피드는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린 모두 트루먼쇼에 들어가 있는 건데, 사용자가 20억 명이면 20억 개의 트루먼쇼가 전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범용적인 솔루션이 아닌 나에게 최적화된 내용으로 나만 조지는데, 당해낼 방법이 없다.

 

 

우리는 각각의 트루먼쇼 주인공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고객을 사용자(User)라고 부르는 두 대표적 산업군이 있다. 마약, 그리고 소프트웨어이다.’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약이 그럴 수 있듯 소셜 미디어 역시 이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한 출연자들 역시 중독을 겪었다. 그들은 스스로 트위터, 레딧, 이메일 등에 중독되었다고 고백한다. 전 핀터레스트 회장은 퇴근하고 나서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는커녕 주방에서 혼자 핀터레스트를 들여다보곤 했다고 이야기한다. <나르코스(Narcos)> 같이 마약을 다루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자기 약에 취하지 말라’는 경고를 자주 접한다. 자기가 취급하는 약에 중독된 마약상들의 최후는 하나같이 비극이었다(물론 안 그래도 대다수는 비극이다). 트위터의 직원이라고 해서 트위터를 잘 자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똑같이 중독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소셜 미디어의 확산과 십대 여학생들의 자살/자해율 증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서로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좋아요’를 만들었는데, 우리는 좋아요의 개수에 집착하고 예상보다 좋아요가 적으면 실망을 느낀다. 친구가 사진에 나를 태그 하지 않으면 은근히 기분이 나쁘고, 예쁘게 찍어서 올린 사진에 반응이 그저 그렇다면 기분도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을 다들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감정을 이렇게 소모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그렇게까지 매달리게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 멘탈이 잡힌 성인은 이런 감정을 겪어도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겠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십 대 청소년들에게는 소셜 미디어 속 세상이 상상 이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소셜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미국 여성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영화는 이어서 사회의 양극화에 소셜 미디어가 상당히 깊게 관련되어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특정한 정치적인 스탠드의 영상을 몇번 접하게 되면, 알고리즘은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그와 관련된 영상, 글들을 줄 세워 사용자에게 전달한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던 생각도 유튜브 속 진행자들의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들을 거치고 나면 어느새 그것이 유일한 정답과 정의로 자리 잡는다. 모두가 ‘대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보같이 행동하는 거야? 이런 것도 모른다고?’ 라며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이들을 싸잡아 무식하거나 악한 사람으로 취급해버린다. 미국에서 중도 공화당 지지자와 중도 민주당 지지자의 생각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양극화를 가속화하는데 소셜 미디어가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매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자신의 특정 정치적 신념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주변인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대체로 해당 지식과 배경을 유튜브나 SNS를 통해 받아들인다(거의 대부분 유튜브를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과연 자기 생각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까지 골고루 팔로우하며 균형잡힌 시각에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거의 비슷비슷한 채널들이 같은 스탠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전달한다. 따라서 이를 구독하는 사람은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확신을 보여주는데, 왜 너만 세상을 모르고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게 되는 것이다. 각자가 다른 색안경을 쓰고 이 세상의 색깔이 어떤지 수준 낮은 논쟁을 하는데, 결론이 화합과 존중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소셜 미디어가 이렇게 부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무래도 병폐를 다루는 영화이다 보니 소셜 미디어가 자칫 지금 당장이라도 없애야 하는 괴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이 플랫폼들은 그동안 우리를 주변 사람 또는 헤어진 사람들과 이어줬으며 아랍의 봄이나 홍콩 민주화 운동 같은 다양한 정치적 움직임에서 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20년을 살면서 구글이나 유튜브와 담을 쌓고 지내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고, 새로운 기회를 얻는 사람들이 참 많은 만큼 이를 양날의 검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자신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각각이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 ‘소셜 딜레마’를 조금씩 풀어나가 관계와 인간성의 회복을 이뤄내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소셜 딜레마>는 다큐 영화지만 동시에 공포 영화일 수도 있다. 필요 이상으로 과대포장해 공포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닥쳐있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심리에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사회를 분극 시키고 있는 이 문제만큼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널리 감상될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본인이 SNS나 인터넷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고 느끼거나, 주변에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재밌는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고 싶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추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데 출연진들은 다음과 같은 팁을 남긴다.

  • 알림 설정을 꺼라. 알림만 꺼도 많은 것들을 막을 수 있다.
  •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꺼라(앱에서 시청 기록과 검색 기록을 남기지 않도록 설정하면 됨).